대한민국 버스기사로 살아간다는 것
전쟁같은 도로 위 치열한 시간싸움
꽉 막힌 도로 위 하루에도 수 백 명 승객들의 발이 되어주는 시내버스 운전기사. 수많은 위험이 존재하는 도로 위에서 기사들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 위해 끼어드는 차에 참고 승객들의 항의에 또 한 번 참는다.
우리 생활 가까이 존재하지만 알지 못했던 버스 운전기사들의 이야기. 버스 운전석에 앉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기사들의 고민을 들어보았다.
도로는 막히고, 마음은 급하고
해가 뜨기 전 새벽어둠을 뚫고 운행을 시작하는 버스는 승객보다 조금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 승객들보다 더 늦게 하루를 마감한다. 서울과 경기 일산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경우 첫차가 대략 5시에 출발하기에 첫 차를 운행하는 운전기사들은 30분 빨리 출근해 ‘돈 통’을 준비하고 손님 맞을 채비를 시작한다.
또한 새벽 두시가 넘어 운행이 끝나는 막차의 운전기사는 새벽 서너 시가 되어야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운전석에 앉아 업무를 마감하기까지 버스기사들은 승객들은 모르는 ‘시간싸움’을 벌인다. 복잡한 도로 상황 속에서도 배차시간에 맞추어 승객들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버스회사 차고지에서 만난 운전기사 K씨는 “출퇴근 시간에는 도로가 막히거나 운전 중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해 한 탕(노선 한 바퀴를 운행하는 것) 도는데 몇 분에서 심하게는 세 시간이 초과할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차가 지연된 시간만큼 운전자의 휴식 시간이 감소하기 때문에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넘겨 들어온 기사들은 휴식다운 휴식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기사들은 항상 “빨리 빨리”라는 조급증에 시달린다. 쫓기는 마음으로 차고지에 들어오면 휴식은 물론 식사도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저 시간이 생길 때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것이 K씨의 대답이다. “식사요? 오늘은 11시, 다음날은 1시, 그 다음날은 4시에 점심을 먹으니 속이 좋을 리 있나요? 그래서 기사들은 위장병은 달고 산다고 봐야죠.”
정체된 도로 위에서 휴식시간을 빼앗긴 기사들이 다시 배차 받은 버스를 운행해 나가면 정거장 이외에는 정차할 수 없는 논스톱 운행이 또 다시 시작된다.
서울시내버스를 운행하는 버스기사 P씨는 “버스기사들은 한 번 출발하면 도중에 쉴 수 없어 화장실도 갈 수 없어요. 그래서 물도 못 마시고, 배아플까봐 그 전날 맥주도 마음대로 못 마셔요.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죠. 그렇다고 버스정류장에 차 세워 놓고 화장실 간다하면 손님들이 좋아하겠어요? 창피하지만 속옷이 젖을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버스가 시계바늘처럼 또박 또박 가나요?
2004년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된 이후 노선 간, 업체 간의 과당경쟁은 줄어들었지만 현실성 없는 정책에 버스기사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버스 종합사령실(BMS)이 운영되면서 앞, 뒷 차의 운행시간을 알 수 있는 GPS가 도입되었지만 기사들은 “GPS가 운전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 이젠 나를 괴롭히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지면 GPS에서 경고 벨이 울리고 기사들은 앞차와의 간격을 줄여야 하는데, 도로사정상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과속이나 신호위반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운전자들은 차량이 집중되는 출근시간에 배차간격을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운전자 K씨는 “차가 시계바늘처럼 또박 또박 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도로가 뚫렸다 막혔다 한단 말이죠. 앞차는 막히지 않으면 빨리 가버리고 뒤차는 신호에 걸리면 늦어져요. 기사들은 교통흐름을 알기 때문에 이 신호를 받으면 다음 신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배차간격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신호를 위반하는데 이건 버스기사 아니면 아무도 몰라요”라고 하소연 한다.
그리고 GPS가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역 이름이 틀리는가 하면 정차한 역에는 무정차라 뜨고,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졌다고 해서 쫓아가보니 바로 코앞에 차가 있어요. 게다가 기계가 작동이 되다 안 되다 하다 보니 이제 신뢰를 잃었죠.”
복잡한 도로 위에서 교통정체에 걸려 배차간격이 늘어나면 손님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끔은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럴 때 기사들은 어려움을 설명하기보다 “앞차가 고장났다”고 둘러대기 일쑤다.
버스기사가 불친절한 이유
도로 위 버스운행을 방해하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버스만 들어올 수 있는 버스정류장에 버젓이 영업용 택시나 승용차가 들어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원거리 정차를 해야 한다.
하지만 버스의 원거리정차는 단속대상이기에 적발되면 힘겹게 운전하고 받아든 돈도 과태료로 납부해야 한다. 운전자 P씨는 “버스기사가 차를 삐딱하게 대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거장이 비어있으면 왜 굳이 멀리 대겠어요? 레드존에 들어온 택시가 비켜주지 않아 원거리정차를 할 수 밖에 없는데”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이렇듯 도로 위에서 스트레스 받고 손님들에게 항의 받는 기사들이 승객들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갖기란 어렵다. “우리도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싶죠. 하지만 내 몸이 피곤하고 빨리 운행해야겠다는 정신적 압박 때문에 그런 여유를 갖기 힘들죠.”
하루 수 백 명의 손님에게 일일이 고개를 돌려 인사하려면 목이 아프지만 가급적 승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노력한다는 P씨는 인사를 건네도 답해주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심한 경우에는 “야, 운전이나 제대로 해”라는 핀잔이 돌아올 때도 있다며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것을 넘어서 뺨 맞은 기분”이었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가끔씩 뉴스에 버스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소식이 들려오지만 이는 전체 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한 기사는 “현장에서 손님이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하지만 운전기사들은 거의 쉬쉬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털어놓는다.
하루에도 다양한 승객들을 만나는 기사들이지만 광역버스나 시내버스 모두다 가장 힘든 손님은 바로 ‘취객’이다. 가끔 술에 취한 승객이 운전하는데 시비를 걸어오면 받아줄 수도 없고, 차 안에서 토하게 되면 다음 운전기사가 기분 좋게 운전할 수 있도록 손수 치우는 것도 운전기사의 몫이다.
버스기사들이 말하는 요즘 버스기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바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버스기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앞지르고 달리는 자가용 운전자 그리고 기사를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승객들, 현실과 거꾸로 가는 정책까지 이 모든 것에 마음을 비우고 의연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주는 기사들은 그들만의 조급함과 수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혼잡한 도로위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낸다.
버스 내부의 시스템이 자동화 되어가고 잘 닦인 도로에 중앙차로가 놓여 졌지만 버스 운전석에서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고독하지만 희망을 싣고 달린다 교통이 가장 혼잡한 출근시간에 경기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에 탑승해 출근시간 버스 풍경을 살펴보았다. 7시 26분, 차고지에서 출발한 버스는 서울 아현역에 도착하는 1시간 20분 동안 약 62명 이상의 승객들이 버스를 타고 내렸다. 운전기사는 간간히 승객들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기사의 아침인사에 돌아오는 것은 담담한 침묵뿐이었다. 8시가 되니 차 룸미러로 버스 내부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승객들이 버스에 꽉 찼다. 서울에 진입해 차가 막히는 구간에서는 기사의 한숨이 깊어지지만 교통이 풀리면 기분 좋은 흥얼거림도 들려온다. 이 버스를 운전한 기사 윤모 씨는 운전한지 올해로 30년에 접어든다. “출근길 막힐 때도 많지만 오늘은 아현역까지 오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으니 차고지에 가서 차 한 잔 할 수 있다”고 살짝 미소를 보인다. 바쁜 출근시간이지만 노약자가 탑승하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꽉 찬 버스에 매달리는 마지막 손님까지 태우는 버스기사. 그들은 고단함이 배어 있는 버스에 따뜻한 희망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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